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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광해군: 미완으로 사라진 성군의 영혼

the Jungs 2018. 1. 19.

광해군

광해군은 조선에서 폐위 당한 두번째 임금이다. 그는 정말 뛰어난 인물이었만 그 끝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조정에서도 후계자 중 1,2위를 다툴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고 선조는 그런 광해군을 외면하다가 임진왜란을 직면하자 그를 세자로 책봉한다


광해군은 둘째였는데도 장자인 임해군이 왕이 되지 못한 이유는 임해군이 성격이 포악하고 학문을 싫어했으며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빈 김씨가 살아있을 때는 받았던 선조의 사랑을 광해군을 낳고 2년후 공빈 김씨가 죽자 그 사랑이 소용 김씨에게 기울어서 임해군은 상처를 받고 동생 광해군에 대해서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 광해군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해서 훌륭히 성장하였다.

 

선조는 임진왜란 직후까지 세자 후보로 신성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신성군의 장인이 선조가 총애하는 신립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선조는 단순히 오랑캐가 조금 크게 소란을 피운 것이라 생각하고 신립 장군이 왜구들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신립장군은 패전하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정은 발칵 뒤집어졌고 하루 빨리 세자 책봉을 해야한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선조로서는 세자 책봉보다는 피난이 먼저였고 그날 밤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책봉식을 마치고 광해군은 선조와 함께 명나라로 피신을 가고 선조는 평안도 영변에 이르렀을 때 광해군에게 전란 수습을 맡기고 후궁들과 떠난다


광해군은 전쟁 경험은 없었지만 의병을 모집하고 전란을 수습하면서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고 이는 군사와 백성의 사기를 올려 놓기 충분했다.

 

험난한 세자 시기를 넘기고 왕이 된 광해군은 당파를 초월한 인재 발탁, 대동법과 호패법 시행 등등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으나 결국 명나라를 등지고 후금을 택했다는 점에서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광해군은 좋은 정책들을 많이 배출해 냈지만 후금과 손을 잡으면서 자신의 신하들을 다 잃고 만다. 내 주위의 사람을 잘 챙겨야한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왕이다.

조선 임금 잔혹사
국내도서
저자 : 조민기
출판 : 책비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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