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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태어난 남자, 연산군: 예정된 비극이 만들어낸 화려한 폐허

the Jungs 2018. 1. 19.

연산군


연산군은 조선 최초로 폐위된 임금이다


폭군으로 상당히 유명한 이 왕은 적자계승이라는 명분을 완벽하게 지켜서 왕위에 오른 몇 안되는 임금 중 하나이다


그러나 명분이 완벽하다고 좋은 왕이 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연산군이 즉위할 무렵 조선은 몹시 안정적이었다. 훈구 공신 세력이 많이 사라졌고 훈구들을 견제할 새로운 세력인 사림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즉위하기 이전 성군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는 세종과 성종은 사림들을 매우 아끼고 정계에 진출하게 하려 했다. 그래서 인지 임금에게 총애를 받는 사림들은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림들이 왕을 대하는 태도는 성종과 연산군 시대에 큰 차이점이 있다. 사림들은 주로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 임금에게 직접 자문과 간언을 할 수 있는 삼사에 들어갔는데 성종 시대의 사림들은 훈구 세력을 견제하면서 왕에게도 예를 갖추었지만 연산군 시대에는 견제할 훈구 세력이 없어지자 임금을 성군으로 만드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게 된다


즉위 초반의 연산군은 중요 사안을 처리할 때마다 정승들과 의견을 나누었고 연달아 이어지는 제사를 성실히 지내며 대비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는 일도 꼼꼼히 했다. 그 시대의 상소문에는 연산군의 업무 능력에 대한 칭송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임금을 성군으로 만들겠다는 사림들의 노력은 점점 잔소리를 넘어서는 인신공격이 되어갔다. 이런 사림들의 말은 국정을 점점 마비 시켰고 연산군은 점점 지쳐간다


이 때 성종실록을 제작하던 김일손이 연산군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다


세조를 천륜을 거스른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묘사해 그 후손들의 전통성을 무시하는 사료가 연산군의 눈에 띈 것이다


연산군은 김일손을 능지처참하고 그의 스승인 김종직을 부관참시한다. 그리고 이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관리들은 모조리 유배지나 사형장으로 보내버린다. 이 것이 바로 무오사화이다.


연산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쁜 왕보다는 안타까운 왕으로 느껴진다


'그가 조금만 노련한 왕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능력을 고루 갖춘 왕이었지만 막 자리 잡은 사림들을 다룰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도 성군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조선 임금 잔혹사
국내도서
저자 : 조민기
출판 : 책비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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