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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선택된 남자, 중종: 총애를 담보로 정치를 펼친 군주

the Jungs 2018. 1. 19.

중종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앉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왕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신하에 의해 추대된 왕이었다


형님이 무서워

왕위에 오를 당시 19세여서 곧바로 친정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1506년 즉위한 중종은 연산군과 12살 터울의 형제인데 

중종은 연산군을 정말로 무서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산군이 왕이었던 시절 중종과 연산군이 말달리기 시합을 했었는데 연산군이 중종에게 자신에게 지면 군법으로 다스리겠다는 말을 하자 중종이 몹시 무서워 하였다는 일화 또한 있다


사림의 빛 조광조

이런 겁 많은 중종에게 든든한 정치 파트너가 되어 주었던 건 바로 조광조이다


반정공신들이 궁궐에서 설치고 다니던 중종 시대에 거의 없어지다시피 한 사림들에게 

조광조는 구원의 빛이나 다름 없었다

조광조는 당당하게 홍문관에 입성해 중종을 도와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영원한 것은 없어! 하지만 그립다!

그러나 이토록 충성하였던 신하를 유배를 보내고 조광조를 따르던 70여명의 신하들에게 사약을 내리는 비극이 있었다.

 

이 비극의 발단은 중종의 후궁이었던 희빈 홍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 지진이 많이 발생했었는데 이 자연재해를 스스로 자신의 탓으로 여기던 중종에게는 불안과 근심이 상당하였다


그 틈을 타 조광조의 반대파 세력들은 주초위왕이라는 글자를 꿀로 나뭇잎에 써서 벌레로 하여금 그것을 파먹게 하였다

주초위왕이라는 글자는 조씨가 왕이 된다는 말이었는데 이 계략은 조광조가 중종의 총애를 잃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중종은 비운의 왕이다

중종반정의 여파로 재위기간 내내 공신들에게 시달려야 했고 

결국 자신이 내친 신하지만 조광조를 내치고 후회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못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종에게 겁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한 역사의 판단이다.


조선 임금 잔혹사
국내도서
저자 : 조민기
출판 : 책비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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