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사 10월 11일
오늘의 한국사 10월 11일
1953년 대한민국 최초의 자체 제작 항공기인 부활호가 첫 비행하다.
공군기술학교 정비교육대에서 한국 최초로 개발한 항공기. 엔진을 비록한 항공 부품의 신규개발능력이 전무하여 미제 L-16 연락기(영문)의 부품을 전용하였으므로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한 항공기는 아니다.
1953년, 국내 연구진에 의해 4개월만에 제작된 부활호는 그해 10월 11일에 민영락 소령과 이원복 소령이 탑승하여 2시간여 동안의 첫 비행에 성공, 1954년 4월 3일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이 부활을 이룰 것이다'라는 의미로 부활이라는 이름을 받아 부활호로 명명되었다.
1955년까지 공군 초등훈련기와 정찰기로 사용되었으나 1956년 대구의 한국항공대학에 기증되어 1960년까지 비행 훈련 기종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후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고, 그 자리에 경상공업고등학교가 들어선 후 부활호는 그대로 지하 창고에 옮겨진 채로 완전히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결국 공군에서도 소실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1990년, 직접 부활호 제작에 참여했던 이원복 예비역 대령과 문용호씨가 직접 사라진 부활호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부활호가 시험평가를 위해 미 공군에 넘겨졌다는 풍문을 듣고 직접 미 공군과 항공기 제작사에 문의하기도 했지만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하던 상황에서 2003년, 이원복씨는 한 일간지에 '부활호를 찾습니다'라는 기사를 내었고, 이를 본 경상공고의 퇴직자가 '경상공고 지하 창고에 부활호가 있었다'는 결정적인 제보를 하였다. 그리고 2004년 1월 13일, 이씨와 문씨는 학교 지하창고에서 먼지속에 묻혀 녹슬어 있던 부활호의 뼈대를 확인하였다. 하지만 당시 날개와 엔진, 프로펠러 등 주요 부품은 없어진 뒤였고, 공군이 이 소식을 듣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부활호의 복원을 결정하였다.
공군은 경상공고와 회수를 협의한 후, 제81항공정비창의 전문요원들로 복원전담팀을 발족시켰다. 복원팀은 53년 당시 부활호의 제작팀 인원수와 동일한 27명으로 구성하였고, 복원팀은 부활호의 뼈대의 녹을 제거한 후 X레이 촬영 등으로 균열 상태를 확인했다. 설계도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기골의 수치를 재어 항공기의 각 부품의 크기·두께 등을 일일히 계산하는 역설계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설계도를 재현했으나 엔진을 구할 수가 없었다. 공군은 부품 수입사와 미국 거주자의 도움으로 미국의 중고시장까지 조사했지만 당시의 엔진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유사한 엔진을 소유하고 있던 서동화 씨로부터 2004년 7월 엔진을 기증받았다.
이후 복원팀은 종이로 만든 모형으로 비행시험을 한 후, 본격적으로 부활호 제작에 돌입했다. 기계 대신 망치로 알루미늄을 두드리고, 동체를 구성하던 70m의 천(우포)의 방수·탄성처리, 재단, 부착 모두 손으로만 작업했다. 안타깝게도 이때 문용호씨가 완전복원을 보지 못하고 9월 8일 별세하였고, 문씨는 복원식 하루 전인 10월 21일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렇게 부활호가 복원되었고, 10월 22일, 부활호는 반세기만에 제81항공정비창 주기장을 벗어나 KT-1과 함께 비행에 성공했다. 이날 복원기념식에는 당시 조종사 민영락 예비역 대령과 이원복 예비역 대령이 참석하여 부활호의 부활을 지켜보았다.
현재는 공군사관학교, 전쟁기념관, 발견지인 경상공고, 그리고 2008년에 새로 개관한 국립과천과학관에 전시 되어있다. 공사 소장품은 국가등록문화재 제411호로 지정되었다.부활호의 활동 모습과 발굴(?) 후 복구 모습.
이후 독자적인 항공기 개발이 한국군 정비사들의 설계와 제작으로 70년대까지 계속되었으나(해군 항공대의 수상기 "해취호" 등), 자료가 거의 소실된 관계로 어떠한 항공기들을 보유중인지 확실하게 공개된 자료가 없다. 이 부분은 공군인들에게는 매우 아쉬운 부분.
현재 비행가능한 복원한 오리지널 1기와 비행이 불가능한 레플리카 4대가 있는걸로 추정된다. 기체의 특징으로는 부활 마킹과 2개의 주 랜딩기어, 2개의 보조 랜딩기어를 합친 총 4개의 랜딩기어.
최초로 뉴스가 보도된 일자를 기준으로, 2011년 7월 14일 오후 5시 46분에 성공적인 비행을 했다. 기존의 85마력 엔진에서 100마력 엔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며, 아날로그 계기판 대신 전자식 계기판을 탑재하고, 동체와 날개를 덮은 우포는 알루미늄으로 대체하였다.
이 다음 국내생산된 항공기로는 새매호가 있다. 공군에서 초등훈련기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PL-2(영문)라는 비행기의 설계도를 수입해 제작한 비행기다.
2000년 이영섭 전 대법원장 사망
이영섭[李英燮,1919~2000.10.11]
제7대 대법원장. 서울지역에서 판사 생활을 하였으며,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을 역임하고 대법원 판사와 헌법위원(憲法委員)이 되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소송법(訴訟法)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경기도 양주(楊州)에서 출생하였다. 1942년 경성대학(京城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그 해 일본 고문사법과(高文司法科)에 합격하였다. 1945년 경성 지방법원 판사에 취임하고 1947년 서울 고등법원 판사로 승진하였으며 1950년 서울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1952년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교수에 취임하고 1957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경학회(燕京學會) 초청으로 동법과대학에서 소송법(訴訟法)을 연구하였다.
1960년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을 역임하고 1961년 대법원 판사(大法院判事)에 기용되었으며 1973년 헌법위원(憲法委員)이 되었다. 1978년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지내고 1979년 대법원장이 되었다. 저서에 《민법총칙(民法總則)》 《신민사소송법(新民事訴訟法)》(上 ·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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