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사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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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오늘의 한국사 10월 5일

by the Jungs 2020. 10. 5.

오늘의 한국사 10월 5일

 

1922 경성부립도서관(현 남산도서관) 개관


남산도서관[Namsan Library,南山圖書館]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산 기슭에있는 시립도서관.
1922년 7월 1일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고시 제19호로 경성부립도서관규정을 제정하고 1922년 10월 5일 명동2가의 구한성병원을 개수하여 경성부립도서관으로 개관하였다. 1927년 5월 소공동의 대관정 건물로 이전하고, 1928년 6월 열람석 500석을 갖춘 3층 건물을 건축하였다. 1945년 12월 19일 경성부립남대문도서관으로, 1946년 9월 28일 서울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1963년 11월 24일 서울시의 이전계획에 따라 용산구 후암동에 도서관을 짓기 시작하여 1965년 1월 27일 개관하고 1965년 2월 13일 지금의 이름인 남산도서관으로 변경하였다.


대지 1만 3316㎡(4,028평), 건물 9,329㎡(2,822평), 좌석 2,014석이다. 소장도서는 국내외 서적 약 50만 권을 소장하고 있다. 기구는 관장, 도서관자료선정위원회, 도서관운영위원회, 관리과, 자료복사과, 문화활동지원과로 이루어져 있다. 자료실은 인문사회과학실, 자연과학실, 교원자료실, 어문학실, 정기간행물실, 전자정보실, 장애인실, 자동차문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활동지원사업으로 독서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외 서예교실·독서교실·시청각실·미술전시실·전문강좌 등을 운영하고, 중·고등학생 독서동아리 종달새를 지원하며, 6개월마다 《남산도서관 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

1978 자연보호헌장 선포

자연보호헌장[自然保護憲章]
훼손·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에 대하여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자연보호운동에 힘입어 생태학적인 보호의 견지에서 제정된 자연환경보전법과 함께 국민에게 자연환경윤리관을 심어주기 위하여 정부가 선포한 한국의 자연보호에 관한 헌장.
1978년 10월 5일에 선포되었다. 자연보호를 위한 범국민적 결의를 집약 제정한 헌장은 전문과 실천사항으로 되어 있다. 제정과정을 보면 학계·언론계 등 각계 전문가 100명의 위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중 11명의 헌장 심의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하여, 수차례의 심의를 거친 끝에 헌장 제정 위원회와 자연보호위원회의 의견을 거쳐 확정된 것이다.


헌장 전문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자연생태계의 법칙과 조상들의 자연보호관을 소개하고,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자연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을 촉구하고, 자연보호를 위한 국민적 결의를 집약하고 있다. 헌장 실천사항은 7개항의 다짐사항을 통하여 자연보호에 대한 국가·국민의 의무, 국민교육의 중요성, 올바른 환경윤리관의 확립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민간단체인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자연보호운동에 대한 전세계의 움직임은, 유엔환경계획(UNEP)으로 하여금 세계자연보호헌장 초안을 이미 발표하여 곧 선언 단계에 이르게 하고 있다. 그 서문에는 ‘인간과 생물과의 상관관계, 자연보호의 일반원칙, 자연의 적정 관리·이용, 보호의 책임’ 등이 밝혀져 있다. 헌장 초안에서는 ‘환경윤리관의 인식을 위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법제·행정·교육·세제의 강화지원을 위한 제도체계의 확립, 그리고 과학·기술의 적정관리를 위한 기술체계의 발달’ 등을 촉구하는 내용으로서, 이와 같이 적정관리된 귀하고 소중한 자연자원을 영원히 후세대에게 물려주자는 결의문이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 폐막


1986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27개국 4,800여 명의 아시아 선수들이 ‘영원한 전진(Ever onward)’이라는 표어 아래 25개 종목에 걸쳐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16일간 경기를 펼쳤다. 한국은 1979년 서울대회 유치 희망을 공식 발표한 뒤 1981년 아시아경기연맹 총회에서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이 대회의 운영기술 및 경험 축적은 2년 뒤에 열린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회에는 모두 33개 경기장과 54개 연습장이 이용되었다. 경기장은 기존시설 20개를 보수·활용하는 외에, 1984년에 올림픽주경기장과 수원실내체육관을 완공했다. 서울종합운동장 건너편에 지은 선수촌은 5,000명 수용규모의 아파트 18개동과 대형식당·국제센터·종교관·병원·행정센터·본부건물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메인프레스센터는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어 국내외 보도진을 지원했고, 아시아방송센터에는 30여 개국에서 55개 방송국이 참여했다.

대회운영에는 각 분야 요원 1만 9000명과 자원봉사자 5만 4000명이 참여했고, 운동경기 외에 32개 공식행사와 20여 개 비공식행사로 꾸며진 문화예술행사가 열렸다.

경기종목은 육상·수영·양궁·배드민턴·농구·볼링·복싱·사이클·승마·펜싱·축구·골프·체조·핸드볼·하키·유도·조정·사격·탁구·태권도·테니스·배구·역도·레슬링·요트로서, 올림픽경기대회·아시아경기대회는 물론 역대 국제경기대회사상 가장 많은 경기였다. 36개 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고 금메달수는 모두 269개(육상 42개, 수영 34개)이다. 1위는 금메달 94개의 중국, 2위는 금메달 93개의 한국, 3위는 금메달 58개의 일본이 차지했고 이란(금메달 6개)과 인도(금메달 5개)가 4·5위를 차지했다.

기록면에서는 세계신기록 11개, 세계타이기록 2개가 수립되었다. 한국은 기록경기인 육상·수영·양궁·사격 등과 투기, 개인경기인 복싱·태권도·유도·레슬링 등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이전까지 경기수준에서 중국·일본에 뒤처지던 것과는 달리 일본을 제치고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벌였다. 구기종목인 축구·하키·테니스·탁구·배드민턴·핸드볼 등에서도 아시아 정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부분적으로 대회의 준비·운영이 미흡했던 점을 지적받기도 했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했다가 반납한 불명예를 깨끗이 씻었다. 한국은 경기력의 향상과 함께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누르고 아시아 스포츠강국으로서 위치를 다졌음은 물론, 아울러 한국의 발전상과 국력을 세계에 인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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