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사 10월 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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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오늘의 한국사 10월 3 일

by the Jungs 2020. 10. 3.

오늘의 한국사 10월 3일

 

1955년 단기 4288년 개천절 기념식

 

개천절[開天節]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이 개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

10월 3일.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여 이 날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하였다.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날을 기리는 거족적인 제천의식은 먼 옛날부터 전래되었으니,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마한과 변한의 계음(契飮), 고구려의 동맹(東盟), 백제의 교천(郊天), 신라와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등에서 행하여진 제천행사에서 예를 찾을 수 있다.

개천절은 1909년 나철(羅喆)에 의해 대종교(大倧敎)가 중광(中光:다시 敎門을 엶)되면서 경축일로 제정하고 해마다 행사를 거행하였다. 특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고 중국으로 망명한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공휴일로 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른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그러나 음력 10월 3일을 양력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19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였다.

 

1970년 북한 조류학자 원홍구 사망

원홍구[元洪九,1888.4.8~1970.10.3]

북한의 조류학자. 전국을 채집 여행하여 한국산 미기록 조류를 포함하여 1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1929~1941).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생물학부 부교수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북한의 조류학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저서에 《조선조류원색도설》, 《조선조류지 1~3》, 《조선짐승류지》 등과 30여 편의 학술논문이 있다.
평안북도 삭주(朔州) 출생. 1910년 수원농림학교를 마친 다음 일본 가고시마고등농림학교[鹿兒島高等農林學校]로 유학하였다. 수원농업시험장 기사를 거쳐 1920년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박물학(생물학)을 가르치는 한편 식물학에 뜻을 두어 국내는 물론 타이완에까지 원정하여 식물채집을 하였다. 그 후 조류채집 및 분류에 전념하였다. 1931년 평안남도 안주공립농업학교로 옮긴 이래 자신이 채집한 조류의 목록을 학술지에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수원고등농림학교 25주년 기념논문(1934)에 조선조류목록을 발표하였다. 전국을 채집여행하여 한국산 미기록 조류를 포함하여 1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1929~1941).
1940년에 함경남도 영생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고, 함흥의학전문학교에서 생물학을 강의하였다. 1945년 평안남도 덕천공립농업학교 교장으로 옮겼다가 강서농업학교 교장을 거쳐,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생물학부 부교수로 취임하였으며, 이후 북한의 조류학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생물학 박사학위의 수령과 함께 과학원생물학연구소장으로 재직하였다. 저서에 《조선조류원색도설》(1958) 《조선조류지 1~3》(1963~1965) 《조선짐승류지》(1968) 등과 30여 편의 학술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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